사과, 를 베어무는 소리가 머리 뒤쪽에서 들렸다. 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치아가 깨문 것이, 이어서 턱을 움직여 씹는 내용물이 사과임을 알아챈다. 자명한 증거가 사고회로에서 정보와 자료로 처리되었으니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지만, 그럼에도 셜록은 곁눈질로 존을 쳐다본다. 존은 오른손에 두 번 접은 신문을, 왼손에 사과를 들고 있다. 쓸데없어, 라며 뇌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시선은 그보다 빠르게 사과의 표면을 훑는다. 물론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윤기가 반들거리는 붉은색 과육 껍질에 불과하다. 시선은 이제 존의 얼굴로 옮겨붙는다. 저번보다 평균 0.5cm 정도 더 길어진 머리칼. 오른쪽 볼이 유난히 튀어나와 있다. 아침에 면도한 턱이 움직이는 모양을 따라 안쪽 어금니가 사과를 뭉개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신문을 가볍게 훑어보는 눈. 글씨가 작은지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그 외에는? 존. 그 모든 요소는 퍼즐처럼 맞춰져 그가 존 왓슨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준다. 더 이상 저장할 정보는 없다.
그러나 셜록은 현미경 속 박테리아를 들여다보는 대신 ‘사과’를 먹는 ‘존’을 쳐다본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그게 뭐지? 사고회로가 깜빡거린다. 마치 덜 꽂힌 플러그에서 틱, 틱, 소리를 내며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처럼. 삭제된, 아니면 적어도 삭제했다고 판단한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재생되는 건 그 순간이었다.
나는 네게 빚을 졌지, 셜록.
‘네게’ I
‘빚을’ O
‘졌다’ U
고.
셜록은 눈을 빠르게 감았다가 뜬다. 목소리는 사라졌고 대신 존이 그를 쳐다본다. 뭐 도와줄 거 있어? 그는 반쯤 먹다 만 사과를 접시에 내려놓는다. 그의 모든 행위가 금방이라도 부엌으로 건너가 그가 요구하는 모든 부탁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암시를 한다. 셜록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됐어. 그는 고개를 돌린다. 존은 다시 사과를 먹기 시작한다. 과육을 씹는 소리마다 목소리가 반복된다. 셜록은 고개를 흔들어 소리를 내쫓는다.
포타 백업
2019.08.1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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