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장르

[ True Detective ] 여파

J / 제이 2024. 6. 6. 21:26







  러스트가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을 흘끔 보는 동안 마티는 오로지 도로에만 신경이 쏠려 있었다. 뭉툭한 손가락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새없이 꿈틀거렸다. 손톱에 미처 닦지 못한 흙먼지가 묻어있었다. 마티는 불안정하게 운전대를 고쳐잡았다. 에어컨을 켰는데도 마티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연신 흘러내리는 것을 러스트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차 세워.

  뭐라고?


마티가 고개를 홱 돌려 조수석에 앉은 러스트를 노려봤다. 난데 없이 유리조각에 찔린 것처럼 날선, 그리고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세우라고. 차를. 러스트가 재차 말했다. 마티가 잔뜩 눈썹을 위로 치켜세우고 씩씩거렸다. 사실은 겁먹은 것이다.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거기로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도.


   주위를 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 마티.


  러스트의 말을 듣고도 듣는 척 만 척 다시 앞을 보던 마티는 결국 거칠게 핸들을 꺾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는 운전석 뒤로 기대앉아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시동을 끄지 않은 차가 덜덜 흔들렸다. 러스트는 기다렸다.

  이윽고 마티가 박차듯 문을 열고 등 뒤로 세게 닫았다. 밖에서 토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러스트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 운전석으로 손을 뻗어 시동을 껐다. 그제야 진동이 멈췄다. 그는 주머니에서 카멜을 꺼내 입에 물었다. 요 며칠 새 정신을 곤두서게 한 약기운은 서서히 물러가고 원래 자리로, ’러스트 콜‘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야수가 사냥을 마친 후 발톱을 넣어두듯이. 그러나 포만감 같은 건 오지 않았고 그도 기대하지 않는다. 혀에는 오로지 재와 납의 맛이 더욱 두텁게 남았다.

  밖에서는 마티의 구역질이 끝난 모양이다. 대신 기침이 오래 이어졌는데 간간이 훌쩍임도 섞여 들렸다. 러스트는 차에서 내렸다.


  ...씨발.


  러스트가 다가섰을 때 마티는 길바닥에 연신 침을 뱉고 있었다. 그러고 한 번 더 욕을 했는데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정신 나간 짓에 동참하게 한 그의 파트너? 숲 속의 미치광이? 혹은 그 미치광이의 머리통을 박살낸 자기 자신? 어쩌면 셋 다일지도 모르고. 러스트는 그에게 반쯤 남은 물을 건넸다. 마티는 몇 번 입안을 헹구고도 개운하지 않는지 얼굴을 찡그리고 입맛을 다셨다. 남은 물은 모조리 얼굴에 들이부었는데 이 쪄죽는 더위를 식히는 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마 젖어버린 눈가를 씻으려는 걸 테지. 물로써 물을 씻어낸다. 어쩌면 피도. 러스트는 피로 얼룩진 제 딸아이를 품에 안았던 기억을 잠깐 더듬어보다가 담배를 깊이 빨아들었다.

  마티의 손에서 페트병이 잔뜩 구겨졌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이 열렸다가 닫힌다. 눈가가 아직 벌겋다. 좀 진정됐어? 러스트가 묻는다.

  마티는 그를 흘끗 쏘아보더니 대답 대신 러스트의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를 가져가 입에 물었다. 이윽고 긴 연기를 내뱉었다. 한숨을 내쉬듯. 러스트는 땀과 미지근해진 물과 피로로 얼룩진 마티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뱃불이 사그라들 때까지, 두 사람은 한참동안 거기에 서 있었다.









포타 백업
2019.08.20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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