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장르

[ True Detective ] Holy Cross

J / 제이 2024. 6. 6. 21:52





  


  도로가 영원처럼 길게 뻗어있다. 허물어진 빈집과 이정표가 유령처럼 양 옆을 스쳐 지나간다. 잿빛 도로. 햇살조차 상해버리는 길. 그 길 위를 달리며 그들은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중이다.

  우린 십자가의 세로선을 가로지르는 중이야. 무시당할 걸 알지만 러스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옮긴다. 그래? 그럼 가로선은? 다소 비아냥대는 말투지만 마티가 의외로 받아쳐준다.

  거기에까지 도달할 수 있지는 모르겠군. 이미 도달했는데 미처 깨닫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고. 러스트가 말한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 하지만 제대로 지고 사는 사람은 드물지. 무겁다고 불평하면서 무게를 가볍게 하려는 자들이 태반이니까. 아니면 애초에 이건 자기 십자가가 아니라고 우기거나 내가 왜 이따위 무게를 견뎌야 하느냐고 삿대질하는 그네들도 있지.

  독백 같은 말은 독한 연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러스트는 창문을 내리고 재를 떤다. 마티가 짜증을 낸다.


  내 차에서 담배 좀 작작 펴라.
  이미 잿더미가 된 길에 재를 더 떨어뜨린다고 큰일나진 않아, 마티.
  뭔 개소리야, 내 차에 니 땀냄새랑 담배 냄새가 난단 말야. 좆같다고.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지.


  마티는 흘끗 조수석을 쳐다본다. 러스트의 얼굴은 뿌연 연기에 둘러 싸여 있는데 마치 안개 낀 숲을 걷는 사내의 얼굴 같기도 하고 또는 면류관을 뒤집어 쓴 것 같기도 하다. 머리에 가시를 두르고 있으면 딱이겠군. 마티는 무심코 생각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럼 넌?
  뭐가?
  네 등짝엔 제대로 십자가가 붙어있느냔 말이야.
  글쎄.


  러스트는 연기를 들이마신다. 가로선에 도달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잖아. 마티는 얼굴을 찌푸린다.


  무슨 대답이 그런 식이야.
  그럼 너는, 마티? 러스트가 되묻는다.
  넌 네 십자가를 똑바로 본 적 있어?
...진짜 짜증나는 새끼.


  마티는 입을 다문다. 러스트도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십자가의 세로선과도 같은 황량한 길을 응시한다. 재와 납과 피로 얼룩진. 그리스도의 피이자 어린 양들의 피. 당장 끝나는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가로선과 세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도달하겠지. 한 시간쯤 지나고 그가 불쑥 말한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마티가 러스트를 쳐다본다.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도로를 본다. 그래, 러스트. 어쩌면. 언젠가는. 두 사람을 실은 차는 아직 달리고 있었다. 그 어딘가의 교차점을 향하여.










포타 백업
2019.08.2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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