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나이트메어

old stories

J / 제이 2024. 6. 5. 15:24







  언제나 이야기, 오래된 이야기들이 발에 채였다.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처럼. 한 입도 대지 않았지만 먼지 쌓여 상해가는 치즈 조각, 또는 바닥에 어쩌다 굴러다니는 당근처럼. 침대나 테이블 아래에 웅크리고 숨어 있는 이야기들, 비밀들. 그런 이야기들은 절망스럽게도 결말이 꽉 닫혀 있었고 희망 따위는 도저히 열리지 않았다. 배고픈 아이가 사탕이 가득 든 병을 발견하고 손 안 가득 사탕을 움켜쥐었다가 병에서 손이 빠지지 않아 손을 절단해야 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꼭 그랬다. 그런 류의 이야기는 도처에 가득했다. 영원히 충족되지 못한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 사탕을 한가득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 잃어버린 손의 사연. 그 누구도 아이의 이름,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내지르던 비명 따위는 기억해주지 않았다.

  부엌에는 노란 우비를 뒤집어쓴 아이(혹은 아이의 형태를 갖춘 '이야기')가 테이블 아래에 웅크리고 있었다. 주방장이 큼지막한 발을 끌며 이쪽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식스는 숨울 죽였다. 주방장은 도마에 꽂아둔 커다랗고 넓적한 칼을 다시 빼들었다. 고깃덩어리는 어렵지 않게 열어젖혀졌다. 식스는 눈을 반쯤 덮은 머리칼 사이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텅 빈 배도 저렇게 열어볼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다. 열 수만 있다면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쓸어담고 싶었다. 바짝 마른 빵, 상한 치즈 조각이어도 좋으니 뱃속에 꽉꽉 욱여넣은 다음 다시 닫고 싶었다. 굶주린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게. 한 치의 빈 틈도 없이.

  아이는 두 팔과 두 손으로 배를 감쌌다. 허기질 즈음엔 꼭 그때가 생각났다. 그것도 이젠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다. 나뭇가지에 아슬히 걸린 달과 내민 손바닥에 고인 창백한 빛에 대한 이야기. 맞잡은 손 안에서 송송 솟아나고 차가운 밤공기에 식어버리길 반복하던 땀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태엽처럼 감고 또 감던 오르골의 노래. 그러나 식스는 더는 기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남아있던 멜로디를 타고 반복되던 이야기는 이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의 단편적인 이미지들로 남았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기억의 편린을 떠올리면 왜 주린 배가 더더욱 고파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방장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스는 살그머니 테이블 아래에서 빠져나와 도마 옆에 있는 열쇠를 집어들었다. 이름이 있었는데. 열쇠로 자물쇠를 풀었을 때 식스는 문득 생각했다. 문을 밀어젖히면서 그 이름을 기억하려고 해봤지만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을 기억해줘야 하는 이유도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 배가 요동차게 꼬르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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